프랑스 현대 시의 기원이 된 보들레르에서
침묵과 언어 사이에서 통로를 찾는 이브 본푸아까지,
20세기 위대한 시인들의 발자취를
충실하게 탐색하는 불문학자 오생근의 필생의 작업
“그 한마디 말의 힘으로
나는 삶을 다시 시작한다”
_폴 엘뤼아르
프랑스 문학사에서 최초의 현대 시인이라고 이야기되는 샤를 보들레르에서 침묵과 언어 사이에서 통로를 찾는 이브 본푸아까지, 프랑스 현대 시인 18명의 작품 가운데 155편을 엄선해 ‘깊이 읽기’를 시도하는 오생근 교수의 『프랑스 현대 시 155편 깊이 읽기』(총 2권)가 태국 복권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에는 불문학자이자 문학비평가로서, 그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프랑스 문학과 이론을 한국에 소개하는 작업을 해온 저자의 평생 연구의 성과가 담겨 있다. 저자에 따르면 이 책은 프랑스 현대 시인들의 예술가적 탐구와 ‘견자’의 시적 모험에 공감하기 위해서, 그리고 시적 언어의 진실과 아름다움에 투영된 그들의 열정과 고투의 발자취를 충실히 따라가기 위해서 쓰였다. 저자는 시를 읽는 즐거움과 해석적‧이론적 탐구의 욕구를 두루 만족시키는 균형 잡힌 시선으로 시행 하나하나를 정밀하게 검토하는 꼼꼼한 읽기를 시도하는데, 그러면서도 하나의 해석만을 고집하지 않고 또 다른 읽기의 가능성을 열어둔다. 덕분에 세계와 시인과 독자가 텍스트 위에서 만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축제의 장이 펼쳐진다.
총 2권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155편의 시 프랑스어 원문과 번역문, 그리고 각각의 시에 대한 상세한 주해로 구성되어 있다. 원문과 번역문을 나란히 배치해 함께 읽을 수 있도록 했다. 1권 “결함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에는 샤를 보들레르(25편), 스테판 말라르메(20편), 폴 베를렌(11편), 아르튀르 랭보(29편)의 시가, 2권 “그리고 축제는 계속된다”에는 프랑시스 잠(5편), 폴 발레리(6편), 기욤 아폴리네르(9편), 쥘 쉬페르비엘(4편), 피에르 르베르디(4편), 앙드레 브르통(2편), 폴 엘뤼아르(6편), 루이 아라공(3편), 자크 프레베르(9편), 프랑시스 퐁주(4편), 앙리 미쇼(4편), 르네 샤르(4편), 이브 본푸아(7편), 필리프 자코테(2편)의 시가 실려 있다. 소장에 적합한 양장본으로 오래 곁에 두고 읽을 수 있게 만들었다.
■ 책 속에서
보들레르는 최초로 대중과의 결별을 선언한 시인이다. 그는 대중에게 이해받는 시인이 되려고 하지도 않았고, 대중을 위한 시를 쓰지도 않았다. “이해되지 못하는 데 영광이 있다”는 그의 말은 고독한 시인의 자존심을 드러내는 것이었지만, 대중의 이해보다 그가 추구하는 ‘언어의 경험les expériences langagières’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말이기도 했다. 그는 현대 세계에서 모든 ‘표현 불가능한 것’을 ‘표현 가능한 것’으로 만드는 언어의 모험을 초인적으로 감행했다. 그러므로 그의 새로운 시학은 20세기 시인들에게 그대로 살아 있는 전통이 되었다._5쪽(서문)
시의 언어는 나무처럼 자라서 꿈을 꾸게 하거나 희망의 불빛처럼 인간에게 삶의 위기에서 좌절하지 않을 수 있는 용기와 위안을 갖게 한다. 그것이 바로 시의 힘이다. 시의 힘은 공간과 시간을 초월하여 모든 사람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이 프랑스 현대 시의 축제 혹은 한 마당이 되어 모든 시에 내장된 불꽃의 언어가 때로는 따뜻한 등불로, 때로는 폭죽을 터뜨리는 눈부신 섬광으로 떠오를 수 있기를 바란다._6쪽(서문)
보들레르는 산문시집 서문에서 “모든 것이 머리이자 동시에 꼬리”이고 반대로 “모든 것이 꼬리이자 머리”인 형태, “우리가 원하는 곳 어디서나 중단할 수 있는” 자유로운 상념의 전개가 가능한 작품을 산문시라고 말했다. 우리는 시인의 말처럼, 산문시의 “풍요로운 상념”에 동참하면서 “시간이 느리게 가”는 생각의 여행을 즐길 수도 있고, 우리의 독서를 “우리가 원하는 곳 어디서나 중단할 수”도 있다. 산문시에 대한 우리의 해석 역시 마찬가지이다._113쪽(샤를 보들레르_<여행으로의 초대[산문시]>)
그리고 나는 잠자리에 눕는다,
나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 속에서 살았고,
고통을 느꼈다는 것을 자랑스러워하면서.
_114쪽(샤를 보들레르, <창>)
이처럼 자본주의 사회의 도래를 신성한 것의 상징인 후광의 상실에 비유한 버만의 견해를 받아들일 때, 마르크스와 보들레르는 모든 신성한 가치가 사라져버린다에 위기에 공감했다고 할 수 있다. 보들레르의 「후광의 분실」은 위기의 시대에 시인은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 시에서 시인-화자는 후광을 쓰고 다니던 중, ‘불바르le boulevard’를 건너면서 혼란스럽게 달리는 마차들을 피해 뛰어가다가 그만 후광을 잃어버리고 만다. […] 보들레르는 이러한 보행자의 상황에서 자신의 예술작품이 어떤 형태가 되어야 할지를 보여준다._181~182쪽(샤를 보들레르_「후광의 분실」)
이것은 누구의 말인가? 하느님의 말씀인가? 시인의 양심의 목소리일까? 하느님의 말씀이건, 시인의 양심이건, 시인은 자신을 질책하기만 할 뿐, 이 물음에 변명하거나 대답하지 않는다. “넌 뭘 했지?”의 반복은 질책의 어조를 강하게 부각하는 효과를 갖는다. 특히 마지막 행 “네 젊음으로 넌 뭘 했지?”는 순수했던 젊음에 대한 그리움을 환기하면서, 젊은 날의 순수성을 상실하고 방종한 생활에 빠졌던 시인이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는 표현으로 보인다. 이것은 기독교로 전향한 시인이 잘못을 고백하고 하느님에게 용서를 구하는 듯한 모습을 연상시킨다._323쪽(폴 베를렌, <하늘은 지붕 위로……>)
랭보의 작품 중에서 가장 자전적인 시로 알려진 이 시는 주어가 일인칭이 아니라 삼인칭으로 전개된다. 이것은 랭보가 자신의 이야기를 주관적으로 서술하지 않고, 객관화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시인이자 비평가인 이브 본푸아는 이 시를 경탄할 만큼 “뛰어난 시”로 평가하고, 시인의 어린 시절에 대한 “진실한 묘사와 반항적인 정신의 힘이 생생하게” 표현된 작품으로 해석한다. 또한 쉬잔 베르나르와 앙드레 기요가 공동 편집한 『랭보의 작품들』에 의하면, “이 시는 어머니의 이해성 없는 성격이 어떻게 랭보의 반항심을 불러일으키게 되었는지를 깨닫게 해주는 동시에, 어머니 때문에 아들이 위선적이 될 수밖에 없었음을 알게 해주는” 작품이다._388쪽(아르튀르 랭보, <일곱 살의 시인들>)
이러한 그의 독서 체험과 함께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의 ‘견자’ 시론이다. 이 시론에 의하면, 시인은 ‘모든 감각의 이성적 착란’에 의해서, 미지의 세계를 꿰뚫어 볼 수 있는 투시력le voyance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성적 착란’이라는 모순어법을 통해, 이성과 광기의 경계를 넘어서 또는 이성의 한계를 초월한 광기의 정신으로 시를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취한 배」는 이러한 시론이 반영된 작품이다. 이 시의 주인공인 “취한 배”는 모든 관습과 정신의 구속을 부정하고, 험난한 모험의 길을 떠난 ‘자유인’의 상징이자, 새로운 시적 언어를 모색하고 창조하려는 ‘예시자’ 시인의 상징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서 이 시는 새로운 인간으로 탄생하려는 자유인의 정신적 모험이자 동시에 ‘모든 감각의 이성적 착란’과 환각의 체험을 통해 새롭고 창조적인 글쓰기를 시도한 젊은 시인의 시적 모험인 것이다._414~15쪽(아르튀르 랭보, <취한 배>)
화자는 이러한 지옥의 환각 체험을 이야기하면서 “나는 지금 지옥에 있는 기분이다, 그러므로 나는 지옥에서 존재한다”고 진술한다. 이것은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는 경구를 패러디한 것이다. 이 구절이 나오기 전에, 지옥에서의 형벌은 현재형으로 서술되고, 지난날에 지옥보다는 천국을, 악보다는 선을, 지옥의 형벌보다는 천국의 구원을 꿈꾸거나 생각했던 것은 반과거나 대과거로 서술된다. 화자는 천국의 구원을 꿈꾸었던 것은 먼 과거이고, 세례를 받은 것이 자신을 불행하게 만들었다고 단정함으로써 부모를 원망한다. 그는 지옥에서 지내는 생활도 “인생”이기 때문에, “영벌”이 고통이 아니라 “즐거움”이 되기를 기대하기도 한다. 그다음에 “진실” “정의” “판단” “완전” 등의 명사는 기독교인의 모럴과는 다른 시민사회의 개념이다._416쪽(아르튀르 랭보_<지옥의 밤>)
■ 차례
[1권: 결함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
서문 4
샤를 보들레르
알바트로스 | 상응 | 풍경 | 우울 | 허무의 맛 | 우리의 적 | 고양이들 | 언제나 변함없기를 | 연인들의 죽음 | 지나가는 여인에게 | 이국 향기 | 전생 | 아름다움 | 명상 | 불운 | 여행으로의 초대(운문시) | 여행으로의 초대(산문시) | 창 | 취하세요 | 누구에게나 괴물이 있는 법 | 늙은 광대 | 나쁜 유리장수 | 요정들의 선물 | 가난한 사람들의 눈빛 | 후광의 분실
스테판 말라르메
축배를 들며 | 파이프 담배 | 출현 | 바다의 미풍 | 창 | 창공 | 종 치는 사람 | 벌 받는 어릿광대 II | 꽃 | 탄식 | 시의 선물 | 씁쓸한 휴식에 지쳐서…… | 자신의 순결한 손톱들이…… | “순결하고, 강인하며, 아름다운 오늘은……” | “어둠이 숙명의 법칙으로 위협했을 때……” | 잊힌 숲 위로 우울한 겨울이…… | 벨기에 친구들에 대한 회상 | (말라르메 양의) 부채 | (말라르메 부인의) 부채 | 에드거 포의 무덤
폴 베를렌
내 마음에 눈물 흐르네 | 가을의 노래 | 저무는 태양 | 이제는 결코 | 우울 | 감상적 대화 | 하늘은 지붕 위로…… | 희망은 외양간의 밀짚처럼 빛나는데 | 일정한 간격으로 서 있는 울타리가 | 시학 | 달빛
아르튀르 랭보
감각 | 음악에 덧붙여서 | 소설 | 골짜기에 잠자는 사람 | 초록빛 선술집에서 | 나의 방랑 | 일곱 살의 시인들 | 모음들 | 별은 장밋빛으로 울었네…… | 취한 배 | 눈물 | 카시스강 | 아침에 떠오른 좋은 생각 | 오 계절이여, 오 성城이여 | 돌이켜 생각해보면, 오래전에 | 지옥의 밤 | 불가능 | 섬광 | 아침 | 아듀 | 대홍수 이후에 | 삶 | 출발 | 도시 | 방랑자들 | 새벽 | 염가 판매 | 꿈처럼 아름다운 | 민주주의